글을 쓰다

늦가을 살풍경

이뤄질꿈 2012. 11. 14. 11:49
날이 흐리다. 흐리기만하고 비를 뿌릴 것 같지 않은 늦가을 오후였다. 
하늘을 올려 보았다. 구름이 빠르게 흘러갔다. 
얇은 구름 몇 조각 떠 있떤 동쪽 하늘이 금세 잿빛으로 변했다. 
바람이 셌다. 간신히 매달린 나뭇잎들은 바람이 미는 방향으로 칼처럼 누웠다. 
위태로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날려와 몸뚱이에 밖힐 것만 같았다.   
바람은 목 울대와 발목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안쪽으로 안쪽으로 스멀거리며 한기가 기어들어왔다. 
- 넌 다시 겨울을 맛봐야 해. 
낄낄거리며 차디찬 혀로 귓가를 핥고 지나갔다.
내게 겨울은 빨간 모자와 흰빛이 아니다. 
그것은 어둡고 냉혈한 연쇄살인범과 흡사하다. 
굶거나 얼어 죽은 사체를 눈(雪)으로 덮어버린다. 흔적도 없고 평온하다. 공포는 평온 속에 깊이 감춰져 있다. 
그리하여 가난한 자들의 겨울은 저승사자와 함께 살아가는 형국이다. 몸과 마음이 추운 날들이 올 거라고, 못돼먹은 날씨가 경고한다.  


                     ***
여러모로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또는 초겨울 날들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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